신은 언제나 변덕스럽다. 때문에 인간에게 조건 없이 주어진 힘은 이유 없이 사라진다.


 사니와에게 있던 사물의 의지를 끌어내는 능력은 어느 순간 힘을 다 한 것처럼 기화했다. 가까스로 남은 흔적이요 증거는 이미 현현되어있는 남사들 뿐.


 겨우내 아름다움을 과시했던 눈동백은 때가 되어 시들고 빛이 바랬다. 사니와는 그 모습이 마치 저와 같다고 생각했다. 의미 없는 자조다. 한숨을 내쉬며 곁에 있는 작은 짐꾸러미를 들어올린다. 작은 만큼 무게 역시 가볍다. 이곳에서 쌓은 자신의 명예도 고작 그 뿐이리라.


 "이걸로 끝인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남사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오사후네 도파의 태도, 다이한냐 나가미츠. 연이 닿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워서 말이야. 너 같은 사람에게 구애 한 번 못 해보고 넘어가는 건."


 뭐, 그는 그런 검이었다. 사니와는 그런 다이한냐 나가미츠가 썩 좋았다. 고운 말을 해주는 이가 싫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별 건 아니고, 그간 고생 많았어. 이리 와."


 은발의 검이 사니와에게 두 팔을 벌린다. 본디 그의 주인이었던 이는 스스럼 없이 품에 안겼다.


 "이제야 겨우 한 번 안아보네."


 전부 끝나갈 때서야 말이야. 검 역시 주인과 닮은 꼴로 자조하며 웃었다.


 "봄이지. 기온은 따뜻해지고, 벚꽃도 한창 피어나고, 생명들이 되살아나는."


 다이한냐 나가미츠는 사니와의 등을 토닥였다.


 "네게도 새로운 시작이 함께하길 바라고 있을게. 이곳에서."


 검이 주인에게 남긴 것은 마음 뿐만이 아니었다. 사니와는 제 머리를 장식한 무언가를 만져본다. 굳이 보지 않아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눈동백, 그와 닮은 꽃.


 "눈꽃이 필 때쯤이면 다시 나를 생각해줄래?"


 또한 아스라이 바스라져 사라질 것만 같은 미소를 남기고.


나는 말이지.


아주 영리한 공주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버려지는 게 싫어.


공주님은 아름다운 왕좌에 앉아 몸을 동그랗게 말았습니다. 꼭 왕좌에 삼켜질 것만 같았습니다.


버리는 것도 싫고.


공주님의 눈이 천천히 감깁니다. 아, 곧 공주님이 잠이 들 시각입니다. 많이 피곤한 게 분명해요. 왕자님은 고양이처럼 몸을 만 공주님을 안아올렸습니다. 사랑스러운 공주님의 숨은 아주 미약해서, 금방이라도 흩어져버릴 것 같았어요. 나쁜 마법사가 공주님에게 생기를 빼앗아간 탓이에요. 왕자님은 그런 공주님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가능한 한 오래 지켜줄게.


왕자님은 그 말에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맞아요. 여지껏 공주님은 왕자님을 나쁜 마법사들로부터 아주 열심히 지켜주었어요. 어떤 강력한 저주도 공주님에겐 통하지 않았답니다. 왕자님에게 걸린 저주 역시 강한 공주님이 풀어주었고요. 하지만 단 한 가지, 공주님에게 내려진 풀 수 없는 저주가 있었어요.


사랑한다는 거짓말로 내 눈을 멀게 해줘.


공주님은 왕자님의 마음을 의심하는 저주에 걸렸답니다. 왕자님의 저주를 풀어주는 대가로요.


나는 언제나 공주님을 사랑해.


왕자님은 천천히 공주님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주었습니다. 이러면 공주님의 저주도 잠깐 사라지곤 했거든요.


잘 자. 좋은 꿈을.


공주님은 옅게 미소지으며 만족스럽게 잠이 들었습니다. 왕자님의 입맞춤이 통한 게 틀림 없어요. 왕자님은 묵묵히 잠든 공주님의 곁을 지켰답니다. 깨어난 공주님이 외롭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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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침대 맡에 선 새하얀 남자가 입을 연다.


무얼 위해 그의 곁에 있지?


청년의 낯을 한 노파가 천천히 눈을 뜬다. 모조품에 불과한 붉은 안구가 그를 마주한다.


무언갈 바라서 곁에 있던 적은 없어.


가만 남자를 바라보던 두 눈이 벽에 붙은 앤티크 풍 시계로 향한다. 12시 45분. 일어나기에 한참 늦은 시각이다. 노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적갈색 머리칼이 어깻죽지로 흘러내린다.


일전에 들은 말과 다른데.


남자, 마키시마 쇼고는 의미없는 물음을 던진다.


다르겠지. 나는 늙어서 변덕스럽거든.


노파, 아이세 아리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불노장수의 여성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쓰잘데기없는 문답이었다.


당신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을 하도록 해.


남이사.


이름 없는 노파가 코웃음쳤다.


네가 할 말은 아니군. 그렇지?


마키시마 쇼고는 간단하게 긍정하며 미소짓는다. 그런 사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뭐지? 떠보지 말아. 다 늙은 사람이라 쉽게 못 알아들으니까.


자칭 아이세 아리스는 협탁 위에 놓인 하얀 레이스 숄을 집어들어 대강 둘렀다.


나는 당신을 동업자로 생각해.


마키시마 쇼고가 아이세 아리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육체적으론 이길 수 없으리라. 노파는 그를 밀어내는 대신 시선을 던졌다.


부를 만한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아이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토 나나도, 아이세 아리스도 아닌 왕자님만이 아는 '진짜 이름'을.


아이세는 다시 한 번 코웃음친다.


내게 이름따위는 없어.


노파는 마키시마를 지나친다.


이제까지도, 앞으로도 말이야.


그러곤 유유히 멀어져간다. 당연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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