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모습을 감춰 별빛이 쏟아지는 밤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몸. 이러한 밤이 되면 검인 자신도 조금, 감성적이 되곤 한다.


끝없는 정적, 이어지는 고요. 얄팍한 바람에 흩날리는 것은 붉게 물든 단풍과 제 머리칼. 오롯이 홀로 남은 이 시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사락사락.


의미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제 행동이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는다. 잔디가 밟혀 기분좋은 소리를 낸다. 요 근래에 자주 보이는 인조 잔디가 아니다. 전부 살아있는 식물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별빛이 밝다. 찬란하다는 말이 부족할만큼이나 밝았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가까이서 보면 좋으련만, 이곳에 망원경 같은 물건이 있을 턱 없다. 시선을 하늘로 두고 발 닿는 장소로 움직인다. 어딘가 별 구경하기 좋은 위치가 있으리라.


이윽고 도달한 곳은 다름아닌 유리 온실. 한참도 전에 만들어졌지만, 왜인지 쓰이지 않고 식신에 의해 관리만 되던 장물이었다. 평소라면 아무도 없을 장소이기도 했다.


안녕, 바보짓이라도 하러 왔어?


길고 검은 머리칼, 녹색 눈. 저희를 통솔하는 영수다.


말버릇 하곤. 너야말로 뭘 하는 거지?


영수의 발밑을 훑어본다. 하얀 원통과 그를 원조하는 검은 받침대. 천체 망원경.


별 구경.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거든. 그래서 이렇게 공해 없이 별을 볼 기회가 적었어.


아이는 천천히 무언갈 조작했다. 어렴풋이 모양만 아는 저로서는 무슨 조작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달이 덜 밝으니까 별이 많이 보이잖아. 문뜩 생각나더라고. 사놓고 잊었던 게.


조잡한 움직임이 멎는다. 영수는 거리낌 없이 본체를 돌려 제게 향했다.


기왕이니 당신도 볼래? 제법 볼만해.


순수한 호의였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유리알 너머 풍경은 별세계였다. 보랏빛 비단에 수놓인 색색의 금사. 쏟아지는 별무리. 별과 별, 별, 그리고 별.


예쁘지?


영수는 맨눈으로 하늘을 올려보며 만족스레 웃는다. 별이 가득한 하늘보다도 소담스러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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