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달이 해를 삼키고 자시를 넘어 축시. 얼어붙은 밤을 달래는 노래는 허공의 카구라. 상냥한 음색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깨비불을 선두로 한 백귀야행 행렬이 본성 바로 앞을 지나간다.


불, 요괴, 요괴, 불. 그리고 또 요괴.


믿음이 지고 바스라진 오늘날에 와선 흔치 않은 광경이다. 허나 이나리의 검은 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두는 것은, 검은 머리의 인간 뿐.


무얼 그리 보십니까?


인간은 줄지어 흘러가는 요괴 무리에 눈을 떼지 않고 답한다.


이런 건 처음 봐서. 좀 감동하는 중이야.


찬 바람이 검 한 자루와 인간 한 명을 감싸안고 지나간다. 눈동백이 흩날린다.


먹을래?


인간은 몸을 움츠리는 대신 제 옆에 놓인 흰 찹쌀떡을 제게 밀어놓는다.


괜찮습니다. 검인 몸, 어찌 주인의 것을 탐내겠습니까?


그제야 인간은 고개를 돌려 여우를 바라본다. 새싹을 닮은 눈이 투명하게 그를 비춘다.


먹어도 상관 없는데.


상관 없기는. 여우는 주인의 주전부리를 만든 자를 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 장난질을 즐기는 흰 학. 답지않게 주방을 들쑤시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그 자의 투기를 사서 좋을 일 없다. 검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깝게.


푸르른 눈이 다시금 백귀야행을 향했다.


찍어두고 싶은데, 기계로는 담을 수 없겠지.


예에.


여우는 더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눈발이 흩날린다. 주인은 추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묵묵했다. 가끔 길 잃은 도깨비불이 근처를 스쳐지나가도 미동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새해라고, 여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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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까? 새장 속 새를 바깥으로 내보내도.


언제나 같은 답을 바라며 같은 농을 친다. 상대는 다른날과 꼭 같은 답을 한다.


당신은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잖아.


연이 있는 자들과 형제가 있는 한 돌아온다. 그것이 상대의 생각이었다.


당신을 위해 돌아온다면 놀라 나자빠지시겠군요.


비웃듯 입가를 소매로 가리고 눈꼬리를 늘어뜨린다. 상대는 높은 확률로 헛소리를 들었단 반응을 보이며 질린 낯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서 다녀오시기나 하시지.


천하 따윈 줘도 가지지 않겠다는 불손한 태도, 누구의 의에도 설 생각 없다는 느슨한 몸짓. 무엇 하나 예뻐할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상대를 위해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저는 당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닌, 새장을 선택한 새이기에. 길들여진 이상 더는 바깥으로 나돌지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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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녹음이 우거진 풀냄새. 몇 번의 계절이 지났으나 내 안엔 네가 남긴 말이 남아 박혀있다.


질투는 녹색 눈을 하고 있어.

거짓말,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숨탄것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질투를 해. 하지만 당신의 근본은 검이지.


근본은 검이나 지금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 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머리가 있고,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와 자유로운 두 팔이 있어.


그러므로 네 말은 모두 거짓이다.

내 질투는 황색 눈을 하고 있어.


*

톤보키리 씨는 좋겠다.

보통날의 일이다. 스스로도 하잘것없는 투정임을 안다. 그에게는 무엇도 잘못이 없다. 제겐 그저 분출구가 필요할 뿐이다.

무엇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 태도가 싫어.

그 아이가 잘 따르잖아.

내가 시기를 느낄만큼이나. 비집고 올라오는 열등감이 역겨웠다.

주군께선.

뜸을 들이는 시간이 영겁과 같았다.

상대를 가리고 계신다.

목이 타들어간다. 무슨 답을 바랐지? 쌍을 이루지 못한 한 눈에 어른거리는 잔상은 길고 검은 생머리였다.

네 불안정함을 눈치채셨을터다.

알아. 알고 있다. 자신의 상태조차 파악하지 못할만큼 녹슬진 않았다. 모를리 없다. 안다.

질투는 녹색 눈을 하고 있어.

왜 이럴 때,

나는 당신들을 질투해.

네 목소리가.

내 눈이 녹색인 것도 그와 관련이 있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내 눈은 황색이지? 보잘것없는 물음은 포말이 되어 사라진다. 너의 잔상 역시 사라진다. 반신이 은린옥척이었던 공주님이 그러했듯.


*

21세기 초에 숨탄것들은 어릴적 생존을 위해 질투라는 감정을 습득한다는 연구가 있었어.

다정한 목소리와 펜의 달칵임이 공허한 집무실을 메웠다. 눈가가 뜨겁다. 차오르는 것이 피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질투를 하지 않는 것들은, 홀로 살아가는 것, 숨을 받지 못 한 것.

펜이 노래하는 소음공해가 멎는다. 하나뿐인 눈에 녹색 눈 한 쌍이 꽂힌다.

나는 당신의 감정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해.

이건 꿈이다. 지나간 언젠가의 기억이다.

내가 당신들을 질투하기 때문에, 당신도 동료들을 질투하게 된 게 아닐까. 감정은 전염되기 쉬우니까.

숨통이 조여든다. 더는 말하지 마. 내가 숨쉬게 해줘. 나를 부정하지 마. 믿어줘. 사랑해줘. 바라는 것은 한가지. 부디 내게,

너무 힘들면 도와줄 사람을 불러올게. 나는 도움이 안 될테니까.

종속되어줘.

이윽고 온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비명이 터져나온다. 시야가 온통 새빨갛다. 눈을 감아. 내가 여기 있어. 누군가의 부름에 이끌리듯 눈을 감는다. 흐르는 것은 피인가, 물인가.

한 방울, 두 방울.

마침내 눈을 뜨니 네가 있었다.

네가 있었다.

인간은 쉽사리 신을 원망하고 저주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닮은 신은 누구를 원망하고 저주해야하는가. 자기 자신? 네게 답을 갈구했을 때 얻은 답은 간단했다.

타인이겠지.

이 얼마나 인간다운 답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너를 원망해도 되는 걸까. 허나 그러지 못함을 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지하고 있다.

몸은 어때?

젖은 수건이 이마를 쓸어내린다. 녹색 눈이 황혼을 담고 노랗게 빛을 내었다. 내 질투의 색. 황색 눈이 그곳에.

손을 어 뺨을 쓸어주고 싶.

신열에 들떠 무얼 말하고 무얼 생각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무얼 말했어? 너는 무얼 말했어? 귓가가 멍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불확실성에 내던져진 미아라도 된 걸까.

다만 확실한 것은 눈가를 덮어오는 네 손의 온도가,

더 자자. 아직 식사 준비중이래.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따스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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